요 며칠 사이 코로나 19의 치료제로서 길리어드사의 렘데시비르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일반 대중들 사이에 약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대표적인 오해들 몇가지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을 하려고 합니다.
Q. 4월 말 발표된 미국 NIAID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주도의 연구는 하이드록시 클로로퀸 연구에 비해 성적이 좋지 않다.
A. 그렇지 않습니다. 기존에 나온 (하이드록시) 클로로퀸 (+ 아지스로마이신) 연구들은 낮은 수준의 디자인을 가진 연구들이었습니다.
(https://us-stock.tistory.com/24 참고) 한마디로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연구가 아닙니다.
때문에 (하이드록시) 클로로퀸을 실제 임상에 적용할만한 근거가 아직도 없습니다. 반면 이번에 발표된 렘데시비르 연구는
의학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근거를 제시하는 무작위배정 대조군 연구 (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 입니다.
이러한 방식의 연구는 대조군과의 임상성적을 직접 비교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근거를 제시합니다.
Q. NIAID 연구의 결과 렘데시비르의 효과는 실망스럽다.
A. 언론에 보도된 렘데시비르의 성적을 요약하자면 "평균 회복 기간이 렘데시비르 투약군에서 11일, 위약군에서 15일이으로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렘데시비르군이 우월하였고 사망률은 렘데시비르군에서 8%, 위약군 11%로 통계적 차이가 없었다."
라는 것입니다. 이에따라 "사망도 줄이지 못하는데 회복만 4일 당기는 게 무슨 의미이냐?"는 비난이 아주 흔히 관찰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의학 논문과 통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일반 대중의 오해입니다.
이것을 기자들이 잘 설명해 주었다면 좋았겠지만..
이 보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는 첫째, 이 보도는 계획된 최종 결과를 모두 관찰하기 전에 중간 경과를 발표한 것입니다.
잘 관리된 대규모 임상 연구의 경우 연구자와는 독립된 DSMB (Data and Safety Monitoring Board)라는 기구를 두고
이 기구에서 중간에 연구 진행 상태를 점검하게 됩니다. 이 점검을 중간 분석 (interim analysis) 라고 하는데 여기서 양 군간에
중요한 유의한 차이가 발견될 경우 이를 보고할 수 있습니다. 특히 치료군의 성적이 월등하게 우월하거나 혹은
치료군이 오히려 대조군보다 유의하게 성적이 좋지 않다거나.. 하는 상황에서 중간분석을 보고하고
필요할 경우 연구를 조기에 종료시킬 수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대조군의 환자에게 더이상 위약이 아닌 실제 약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후자라면 치료군이 더이상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연구의 경우는 양 군 간에 월등한 차이가 있지는 않았지만 코로나19의 시급성을 감안해서 중간 결과를 발표한 것으로
보이고, Dr. Fauci 역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위와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둘째, 사망률의 차이가 유의하지 않다는 것은 3%의 차이가 크지 않아서가 아니라 -실제로 수치상 아주 큰 차이는 아니지만-
통계적 유의성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첫번째 포인트와 연결되어 중간보고의 성격상
전체 환자의 최종 결과가 계획된 기간만큼 얻어지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곧 충분한 시간을 두고 관찰한다면 양 군간 통계적 유의성이 확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면 이 중간 보고에서 양 군간 통계적 유의성이 0.056으로 유의성에 아주 근접했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5.6% 의 확률로 렘데시비르군의 사망률이 위약군과 차이가 없다.
반대로 94.4% 의 확률로 렘데시비르군의 사망률이 위약군보다 낮다는 의미입니다.
통계적인 약속상 이 유의성이 0.05보다 낮을 때 "양 군간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곧 양 군간 차이가 1%라도 연구 참여한 환자 숫자가 충분히 많고 일관성 있는 결과를 보인다면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고 반대로 양 군간 차이가 15%이더라도
환자 숫자가 작고 각 환자별로 성적이 일관적이지 않다면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렘데시비르와 위약군간에 사망률에 차이가 없었다라는 말은 3%의 차이가 작아서 나온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간보고의 성격상 환자를 관찰한 기간이 짧기 때문에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에따라 전체 결과가 정리되는 시점에서는 유의성이 확보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기대합니다.
셋째, 이 연구는 '중증'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입니다. '경증' 혹은 '중등증'의 초기 환자에서의 성적이 조만간 발표될
것인데 이들 환자 군에서는 더 두드러진 효과가 관찰될 가능성이 기대됩니다.
항바이러스제제는 기본적으로 '바이러스를 죽이는 약'이 아닙니다. 그러한 약은 없습니다.
대신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약입니다. 렘데시비르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이미 바이러스가 최대한 증식한 환자의 경우 항바이러스제를 투약해서 추가 증식을 억제하는 것의 효과가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보다는 초기에 바이러스가 증식되기 전에 투약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이것은 인플루엔자, 곧 독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중증의 환자일 수록 병의 경과가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높음을 감안하면
중증의 환자에서 사망률을 3% 감소시킨 것은 무시할 정도는 아닙니다.
Q. 그럼 렘데시비르는 기적의 명약인가?
A.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적의 약이라면 사망률이 0% 대 11% 정도로 나왔어야 겠지요. 안타깝지만 그런 약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중요한 첫걸음'을 내딛게하는 약이라고는 기대합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약은 감염 초기에 투약될 수록 효과 가 높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2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초기에 환자의 상기도, 쉽게 말해 코와 목근처에서 크게 증식합니다.
때문에 증상 발현 2일 전부터 아주 많은 바이러스를 분출하게 되고 이것이 이 바이러스가 이렇게나 빨리 대규모로 번지는
이유입니다. 증상이 발생하는 시점에서는 바이러스가 이미 크게 증식한 상황이고 항바이러스제의 효과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둘째, 특히 렘데시비르는 주사약제로만 개발되었습니다. 특히 대구나 뉴욕처럼 대규모 감염이 발생한 경우
비교적 경증 혹은 초기의 환자들은 병원에 입원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데,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입원하여 주
사 처방을 받을 경우 렘데시비르의 효과를 가장 크게 볼 수 있는 환자군입니다.
이것이 주사제의 한계입니다. 다만 한가지 희망적인 것은 이 약제는 약물대사상의 문제로 경구용으로 만들기는 어렵다고 하나
코로 흡입하는 흡입형 제제로의 개발을 길리어드사가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이 약을 흡입할 수 있게 되면 입원하지 않은 상태로 자가격리하면서 외래 기반으로 약을 처방하고 투약할 수 있습니다.
또 비인두와 하기도에 직접 약물이 전달되기 때문에 주사약제보다 더 큰 효과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요컨대 이 약은 현재까지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언급되고 주목받은 약제 중 가장 높은 수준의 디자인을 가진 연구에서
가장 희망적인 성적을 보인 약임은 분명합니다. 그 희망의 크기가 '홈런'은 아니더라도 '안타'는 충분히 되어보입니다.
물론 앞으로 1달 이내에 발표될 여러 연구들의 결과를 기다려야겠지만, '안타'에도 목말랐던 상황에서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약제로 생각합니다.
PS. 그래서 길리어드 주식을 샀나요?
아니요. 아마도 제 블로그의 메인 주제가 미국 주식 투자이어서
이것을 궁금해하실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저는 길리어드 주식을 사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제가 추구하는 자칭 '원숭이 투자법' (https://us-stock.tistory.com/1?category=675919) 에서는
최소 10년 가까이 꾸준한 우상향의 그래프를 보인 기업에만 투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습니다.
길리어드는 타미플루 개발, C형 간염 치료제 개발 등등 아주 탄탄한 기술력을 가진 우량기업이고
현재 주가 기준 배당률도 1년에 3.4%로 상당히 좋은 조건의 기업입니다.
다만 아쉽게도 2015년 이후 약 5년 가까이 주가의 흐름이 좋지 못했던 기업으로 개인적으로 기업의 역량을 감안할 때 충분한
투자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함에도 제가 추구하는 제 나름의 안전성 위주의 장기 투자 원칙에는 맞지 않아 투자를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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